지금 올림픽 공원 소마 미술관에서는 멕시코의 천재 여류 화가 '프리다 칼로-절망 속에서 피어난 천재 화가'展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실 6월달부터 진행되었던 전시로 전시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요. 막바지에다가 평일 오후, 그리고 날씨가 굉장히 안좋아서 사람들이 별로 없겠구나 했는데.. 

줄 서서 표를 끊고 전시장 내부에도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 모습이었습니다. 진심 깜짝 놀랐다는 점...




입구에는 이렇게 프리다 칼로의 자택 대문을 재현해 놓았습니다. 정말 프리다 칼로의 집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죠 :) 회화 화가의 집답게 대문과 벽의 색조화가 눈길을 확 사로잡았습니다.





<프리다 칼로 FRIDA KAHLO 1907~1954>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시티의 남쪽 변두리 코요아칸에서 독일인 사진가 기예르모 칼로와 오악사카 출신의 멕시코 여인 마틸데 칼데론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925년 18세에 그녀는 남자친구와 함께 버스를 타고 가다가 전차와 충돌하는 큰 교통사고를 당하는데, 이때 입은 심가간 부상으로 그녀의 삷은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오랫동안 침대 신세를 지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인데요. 교통사고의 여파와 21년 연상의 바람둥이 벽화작가 디에고 리베라에 대한 애증과 동지애가 그녀의 작품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고 독보적인 예술세계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Ⅰ 비둘기와 코끼리

이번 전시는 멕시코 미술의 열렬한 컬렉터였던 자크와 나타샤 겔만 부부의 컬렉션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프리다 칼로의 작품들과 함께 그녀의 남편이자 멕시코 벽화운동의 주역인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 또한 볼 수 있습니다. 칼로와 리베라는 멕시코 근대미술의 커다란 두 개의 축으로 평가되며, 그들의 신화는 작품 뿐 아니라 활발한 사회 정치적 참여활동, '비둘기와 코끼리'로 비유되는 그들의 상반된 외모, 애증과 동지애, 그리고 정신적인 강인함등이 유머러스하게 떄로는 드라마틱하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첫번째 섹션에서는 그녀와 디에고 리베라의 연대기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해놓은 것과 부부를 찍은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Ⅱ 절망 속에서 피어난 천재 화가

어렸을때부터 소아마비, 왼쪽 다리 11곳 골절, 오른발 탈골, 왼쪽 어깨 탈골, 요추 골반 쇄골 갈비뼈 치골 골절, 버스 손잡이 쇠봉이 허리에서 자궁까지 관통. 일생동안 척추 수술 7번 포함 총 서른 두번의 수술, 오른쪽 발가락 절단에 이어 무릎 아래 절단, 세번의 유산.

이 숨막힐 것 같은 끔찍한 병원 기록이 그녀의 절망을 대변할 수 있을까요.

그녀가 멕시코의 보물이 되기 전까지 수많은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작품이 초현실주의작가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고 칸딘스키는 눈물까지 흘렸다고 하는데요. 그녀는 결코 꿈을 그린것이 아니라 자신의 현실을 그린것이며 스스로를 초현실주의 명칭 안에 가두지 않는 작가였습니다.

<발이 있는 드로잉 1946>


<침대에 앉은 자화상 1937>


<원숭이와 함께 있는 자화상 1943>


<땋은 머리의 자화상 1941>



내가 나를 그리는 이유는 너무 자주 외롭기 떄문에. 그리고 그것이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Ⅲ 예술과 사랑

프리다 칼로를 절망에서 피어난 천재 화가로 만든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디에고 리베라였습니다. 육체적 고통에 더하여 리베라의 바람기로 인한 정신적 피폐가 작업에 본격적으로 몰두하게 하였죠. 1929년, 당대의 인기 벽화작가 디에고 리베라와의 결혼으로 그로부터 수년간 그의 그늘에서 화려한 멕시코 전통 복장을한 눈에 띄는 외모의 멕시코 여인으로만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리베라가 미국등 오랜 외지 생활이 길어지면서 향수병에 지쳐 고향에 돌아왔을 때 동생 크리스티나와의 불륜에 절망한 칼로는 이후 혁명가와 조각가의 사랑 동성애 등을 거치며 폭풍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수많은 작품을 남기게 되죠.

뉴욕 전시를 통해 사진가 니콜라스 머레이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곧 결별하고 멕시코로 돌아온 칼로의 작가로서의 성공이 리베라에 대한 갈증을 채워주지는 못했는데요. 결국 이혼 1년만에 다시 재결합하게됩니다.

서로 끌리나 결코 만날 수 없는 운명임을 암시하는 그림을 자주 그렸던 칼로. 리베로를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그 마음이 그림에서도 느껴졌습니다. 


<디에고 리베라의 초상 1937>


<우주, 대지(멕시코), 디에고, 나, 세뇨르 솔로틀의 사랑의 포옹 1949>


<내 마음속의 디에고 1943>




디에고는 내게 모든것이었다. 나의 아이, 나의 애인, 나의 우주..






Ⅳ 예술과 혁명

칼로와 리베라의 정치적 성향은 한결같이 혁명적이었습니다.

멕시코 전통의상을 즐겨 입던 칼로는 자신의 뿌리를 상징하는 여러가지 도상들이나 그림에 글씨를 넣는 멕시코 전통 봉헌화의 전형적인 구조와 세밀한 표현방식을 통해 민주주의적 성향을 은유적으로 드러냈습니다.

반면, 디에고는 멕시코 벽화운동의 선봉에서 작품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적극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멕시코 역사는 그를 민중의 역사를 장엄한 서사시로 그려낸 도전적인 혁명가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해바라기 1943>



<칼라행상 1943>


<나타샤 겔만의 초상 1943>




Ⅴ 비바 프리다!

의외로 결혼 전에는 심플한 블라우스와 단정한 치마를 즐겨 입었던 칼로는 결혼 후 리베라의 취향에 따른 점도 없지 않으나 전략적으로 멕시코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자 전통의상을 입었습니다. 

칼로는 1938년 뉴욕의 줄리앙 레비 갤러리 개인전으로 홀로 뉴욕에 있는 동안 사랑에 빠졌던 유명한 사진작가 니콜라스 머레이가 찍은 사진 속에서 리베라의 대한 애증의 시선 대신 편안하고 그윽한 눈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랑스러운 이미지로 찍힌 칼로의 사진을 본 패션 잡지 '보그'는 눈에 띄는 화려한 옷과 머리장식을 한 매력적인 멕시코 여인에 빠져 화려한 장신구로 가득한 그녀의 손을 잡지 커버로 실으려하기도 했습니다.











<고통과 자기연민의 고리를 끊고 영면한 칼로를 슬프게 내려다 보는 리베라의 모습>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전시부터 아트샵까지, 이번 전시는 영상부터 그녀의 편지, 작품 등등 그녀뿐만 아니라 멕시코 근대 미술을 다방면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디에고가 '1954년 7월 13일은 내 생애 있어 가장 비극적인 날이다. 나의 사랑하는 프리다를 영원히 잃었다. 이제서야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일이 프리다를 향한 나의 사랑이었음을 꺠달았다." 라고 적혀있었는데요. 진작에 좀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참 빨리도 깨달았다고 혀를 끌끌 차며 전시실을 나왔습니다 ㅋ_ㅋ 

세계 순회전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총 100여점의 전시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예술 세계와 삶을 조명할 수 있는 전시였습니다. 좀처럼 만나기 힘든 색다른 매력의 멕시코 근대 미술을 만날 수 있었던 시간이었네요 :D








신고

댓글을 달아 주세요



티스토리 툴바